회차 3

심수빈은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리에 납이라도 부은 듯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질주하던 검은색 차량이 그녀의 곁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차가 일으킨 거센 바람에 심수빈은 그대로 바닥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그녀는 차량이 그대로 뺑소니칠 줄 알았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도망쳐도 잡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차량은 되돌아와 심수빈의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수제 검은색 가죽 구두를 신은 남자가 내렸다. 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와 검은색 우산을 그녀의 머리 위로 기울여 쏟아지는 비를 막아주었다.

"괜찮으세요?" 부강민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심수빈의 귓가에 와닿았다.

심수빈이 고개를 들자 날렵한 턱선과 뚜렷한 이목구비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한 깊은 눈빛은 매력이 넘쳐흘렀다.

'이 눈빛…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아 심수빈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약간 허스키함이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녀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하자 다리와 발바닥의 상처가 욱신거려 다리에 힘이 풀리는 바람에 다시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단단하고 강인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품에 안았다.

부강민의 품에 안긴 심수빈은 그의 몸에서 풍기는 서늘한 향기에 둘러싸였다.

본능적으로 남자의 가슴에 손을 짚자, 옷 위로도 심장이 터질 듯한 그의 단단한 가슴 근육이 손바닥에 선명하게 느껴졌다.

화끈 달아오르는 손바닥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부강민을 밀어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그의 품에 안긴 채 번쩍 들어 올려졌다.

미간을 찌푸린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부강민을 쏘아봤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저 내려놔요!"

유재민과 3년이나 연애했지만 고작 손만 잡았던 터라, 낯선 남자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부강민은 심수빈을 내려다보며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다치셨으니 병원에 가야 해요."

"저, 혼자 걸을 수 있어요." 가까운 접촉에 불편함을 느낀 심수빈이 몸을 버둥거렸다. 남자의 서늘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고, 그의 단단한 몸이 온몸을 감싸오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가만히 있어요." 명령조가 섞인 남자의 낮은 목소리에 심수빈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얌전히 그의 품에 안겼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차가운 공기에 심수빈은 참지 못하고 재채기를 터뜨렸다.

부강민은 에어컨을 끄고 심수빈의 얇은 옷차림을 흘깃 쳐다본 뒤 자신의 재킷을 벗어 그녀의 몸에 덮어주었다.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재킷에는 부강민의 향기뿐만 아니라 그의 체온도 남아 있었다. 이유 모를 두근거림에 심장이 크게 일렁였다.

부강민은 그녀의 빨개진 얼굴을 내려다보며 눈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감사하다는 말은 제가 해야죠."

"네?" 심수빈이 부강민을 쳐다봤다.

부강민은 태연하게 그녀를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사과를 받아주고, 보상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는 빠르게 달려 가까운 병원에 도착했다.

심수빈은 혼자 걸을 수 있다고 고집했지만, 부강민은 그녀의 절뚝거리는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응급실까지 부축했다.

심수빈이 응급실에서 나왔을 때 부강민은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녀를 발견한 부강민은 급하게 전화를 끊고 다가왔다. "이건 제 연락처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세요."

"따로 바라는 건 없습니다." 심수빈은 부강민이 건네는 명함을 거절했다. 일이 해결되었으니 더 이상 엮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질질 끄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재킷을 부강민에게 건넸다. "재킷 돌려드릴게요. 드라이클리닝 비용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부강민은 심수빈이 건네는 재킷을 내려다보며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더니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지금은 저보다 그쪽이 더 필요하실 텐데요."

그의 다정한 말 한마디에 심수빈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 너무 큰 상처를 받아서 그런가? 그렇지 않고서야 낯선 사람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감동할 리 없잖아?'

"감사합니다. 전 괜찮으니, 먼저 가보겠습니다." 심수빈은 그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지금은 유씨 가문으로 돌아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다.

부강민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녀의 가녀린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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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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