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결국 지씨 가문은 지하린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녀가 듣기로는, 이 일로 인해 지정우와 그의 현 아내 서미연 사이에 큰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그날 저녁, 지하린은 지소은에게 첫 번째 헌혈을 진행했다.
지소은의 출혈량이 워낙 많았기에, 이후에도 여러 차례 헌혈이 더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하린은 병원 VIP 병실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 휴대폰이 짧게 두 번 진동했다.
지하린은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했고 그녀의 친구인 심예주에게서 온 문자였다.
"노씨 가문의 후계자 노영우가 지금 도시 전체를 뒤져서 한 사람을 찾고 있대. 나이는 스무 살쯤 되고 의술에 능하며 쇄골에 검은 초승달 문신이 있는 여자."
지하린은 그 문자를 읽고 장난스럽게 답장을 보냈다. "어머, 신기하네. 전부 나랑 부합되잖아."
심예주가 바로 답장을 보냈다. "야, 지금 장난할 때가 아니라고! 진짜 너일 수도 있잖아!"
지하린은 곧장 답장을 보냈다. "내가 뭘 했다고 나를 찾겠어? 난 그 사람이랑 아무 원한도 없는데."
심예주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잘 생각해 봐. 혹시라도 그 사람 심기를 건드린 적 없는지."
지하린은 그녀가 너무 걱정이 많다 싶어 웃음만 나왔다.
지하린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내가 경시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 그럴 리 없지. 그냥 우연일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그 문자를 보낸 뒤, 상대 쪽에서도 더는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대화는 그렇게 흐지부지 끝이 났다.
하지만 문득 찜찜한 마음이 들어, 지하린은 결국 노영우에 대해 검색해보기로 했다.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입력하자, 곧장 페이지가 전환되며 굵직한 글자들이 화면에 나왔다. "노영우, 28세."
그게 끝이었다.
지하린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뭐야, 이렇게 신비주의야?'
괜히 궁금증이 더해진 그녀는 캐리어에서 태블릿을 꺼내 USB를 꽂았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자 화면엔 복잡한 코드들이 흘러내렸다.
잠시 후, 코딩 창 위에 단출한 대화창이 하나 뜨며 누군가와 연결됐다.
"야, 사람 하나 조사해줘."
"누구?"
지하린은 재빠르게 세 글자를 타자해 보냈다. "노영우."
"OK. 3일이면 돼."
만족스러운 답장을 확인한 후, 지하린은 곧 코딩 창을 닫았다.
같은 시각, 경시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주택지 남호 빌라는 금싸라기 땅인 지역에 위치해 있고 대저택 안엔 밝은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찾았어?"
노영우는 넓은 침실 안의 통창 앞에 서 있었다.
곧게 뻗은 어깨와 서늘한 분위기 속에서도, 몸에 깊은 부상이 있음에도 그의 강렬한 아우라는 결코 가려지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 한 대는 어둠 속에서 간헐적으로 빛을 번쩍였다.
곽서진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직 못 찾았습니다."
노영우는 미간을 한층 더 찌푸리며 담배를 재떨이에 꾹 눌러 끄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찾아."
"네."
곽서진은 대답을 한 후, 품에서 반짝이는 금박이 새겨진 청첩장 한 장을 꺼내 조심스럽게 노영우에게 내밀었다.
"도련님, 한 가지 더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노영우는 그의 손에 들린 청첩장을 힐끗 보며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느 가문에서 보낸 거야?"
"지씨 가문입니다. 지정우가 밖에서 키우던 사생녀를 정식으로 소개하는 환영 연회의 초대장입니다. 지영도 어르신께서 도련님께 꼭 참석해달라고 전하셨습니다."
"꼭?" 노영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 단어를 되뇌었다.
곽서진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거절할까요?"
노영우는 원래도 연회 같은 행사에는 잘 참석하지 않았고, 이 정도 수준의 연회라면 더더욱 관심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지영도 어르신의 당부가 아니었다면, 곽서진은 이 초대장을 노영우의 앞에 꺼내지도 않았을 터였다.
노영우는 잠시 생각하다 청첩장을 집어 들었고 그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흥미가 스쳤다.
'지씨 가문의 사생녀라, 꽤나 수완이 있군. 지씨 가문이 저렇게까지 체면을 세워줄 정도라니.'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 지영도 어르신께 전해. 꼭 참석하겠다고."
연회 당일은 유난히 맑고 쾌청한 날씨였다.
지하린은 병원에서 나와 외곽 산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험한 산길이었지만, 그녀는 익숙하게 정확히 어머니의 묘지를 찾아갔다.
솔직히 묘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묘비 하나 없는 무덤에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있었으니까.
이 길을 수없이 걸어본 게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 위치를 쉽사리 찾아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지하린은 무릎을 꿇고 묘 앞에 앉아 세심하게 잡초들을 뽑기 시작했다.
마치 어머니의 잠을 깨울까 봐 두려운 듯한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잡초를 다 정리한 후, 그녀는 몸을 숙여 세 번 절을 올렸다. 차가운 땅바닥에 이마가 닿았지만, 그녀는 한참을 그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곧 엄마가 받아야 했던 모든 걸 제가 찾아드릴게요.'
다시 한번 절을 올린 지하린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연회는 오후로 잡혀 있었기에 지하린은 클라우드 호텔로 돌아와 의상을 갈아입고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헤어와 화장을 맡겼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땐 이미 해가 질 무렵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은 시각이었고 그녀의 휴대폰 화면에는 지정우가 남긴 부재중 전화가 무려 스무 통이 넘게 찍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린은 전혀 급해하지 않았고, 1층에서 준비된 물건을 챙긴 뒤에야 천천히 출발했다.
그 시각, 지씨 가문의 저택에 도착한 모든 사람들은 이 갑작스레 나타난 사생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이내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분이 나빠 보이는 이는 다름 아닌 지정우의 현 아내 서미연이었다.
그녀는 늘 남편 지정우에게 거침없이 말하는 스타일이었고, 오늘 역시 대놓고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그 촌스러운 계집애가 일부러 날짜를 오늘로 고른 거야! 하필이면 그 여자의 기일에 맞춰서 우릴 엿 먹이겠다는 속셈, 안 봐도 뻔하잖아!"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이건 너무 우연이잫아. 하필이면 우리 소은이 사고 나니까 경시에 있는 병원들에서 RH마이너스형 혈액 혈고가 바닥이 났어! 어떻게 그년이 돌아오자마자 이런 재수 없는 일이 벌어지냐고! 앞으로 편안하게 살기는 글렀어, 젠장!"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 어린 혐오가 담겨 있었다.
지정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고, 이마엔 굵은 핏줄이 울컥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문 앞에서 누군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