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차 3

윤씨 가문 저택에서 나온 김이서는 휴대폰으로 택시를 부르고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18년 동안 살았던 집을 돌아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김이서는 점점 더, 예전의 자신이 가문을 위해 그렇게나 많이 희생하고 열성을 바쳤던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이었는지를 실감했다.

결국 이렇게 쫓겨나는 신세라니...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김이서는 시선을 거두고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메시지 하나가 떠 있었고 바로 그녀의 친부모가 살고 있는 주소였다.

A 시의 강서구. 사람들 사이에서 소위 슬럼가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할 수 없었고 배고픔에 익숙했다.

강동구가 부자들의 천국이라면, 강서구는 가난한 자들의 지옥이었다.

김이서가 그곳에 나타나자마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그녀에게 꽂혔다.

그들의 눈동자 속엔 호기심과 의혹이 가득했다.

'저렇게 예쁘고 기품 있는 여자가 왜 이런 곳에 온 걸까?'

김이서는 도도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타고난 고귀한 기품 덕에, 이곳 사람들은 그녀가 강동구의 부잣집 아가씨 일거라고 짐작했다.

한편, 김이서는 그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곧 허름한 집 앞에 다다랐다.

낡고 심지어 벽에 금이 간 집을 바라보며 김이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집안의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를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아가씨, 누굴 찾으러 오셨어요?"

뒤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김이서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칠고 까만 피부의 한 여자가 조심스레 그녀를 살피고 있었다.

김이서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 여자의 표정엔 놀라움이 스쳤다.

"너, 너는..."

"저는 김이서라고 합니다." '쿵.'

여자의 손에 들려 있던 채소가 전부 바닥에 떨어졌다.

"네, 네가 이서야?"

그녀의 두 눈엔 놀라움과 의아함, 그리고 죄책감까지 섞여 있었다.

"정말 이서구나."

그녀는 김이서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 만지려 했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그녀의 손은 허공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여자는 서둘러 시선을 피하며 다급히 바닥에 떨어진 채소를 주워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저는 진실을 알고 싶어요."

김이서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김이서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 여자의 마음에 강한 파장이 일었고 그리고 그 파장으로 인해 눈가에 눈물이 핑 맺혀버렸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여자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등을 돌린 채 힘없이 말하고는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이서는 담담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그녀는 친어머니를 보면 분노할 줄 알았지만, 막상 이렇게 마주하니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이어 김이서는 집 안으로 들어섰고

허름한 가구들과 낡은 냄새가 가득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이 가족들이 그 동안 얼마나 궁핍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대로 느껴졌다.

"여보, 왔어? 요즘 큰애가 계속 야근하니까 저녁엔 보양 탕이라도 끓여줘야겠어."

방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

김이서를 발견한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이 아가씨는..."

"여보, 이 아가씨는... 이서예요."

"이, 이서라고?"

김천호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지만 그는 그걸 감추려 안간힘을 썼다.

"이서, 이서라니? 그게 누구야?"

"천호 씨. 이제 숨길 필요 없어요."

유수민은 한숨을 내쉬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이서가 이렇게 찾아왔다는 건 이미 진실을 알아버린 거겠죠. 이 비밀을 가슴속에 묻고 산 지 너무 오래됐어요. 전 이제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아요. 오늘, 그냥 제가 시원하게 말할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유수민은 고개를 돌렸다.

김이서의 얼굴과 마주한 순간, 유수민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편, 그 모습에 김이서의 마음도 살짝 흔들렸고 차분했던 그녀의 마음속에서 알지 못할 감정이 밀려왔다.

"하아."

김천호는 한숨을 내쉬며 유수민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이 비밀을 품고 살아온 오랜 세월 동안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지."

김천호는 김이서를 깊이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얼굴엔 깊은 죄책감이 서려 있었다.

"이서야. 우리가 정말 미안해."

김이서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질문을 꺼냈다.

"그때, 왜 저를 버렸어요?"

이토록 직접적인 질문에 김천호와 유수민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한참의 침묵이 흘렀고 결국, 그들은 당시의 진실을 털어 놓았다.

당시, 윤씨 가문의 임유주는 딸이 실종되면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정신적으로 이상 증세를 보였었다.

그런 그녀를 달래기 위해 윤준호가 김씨 가문의 딸을 입양해 그들의 딸로 키우게 된 것이다.

윤준호가 김이서를 데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김이서가 어릴 적부터 병약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김씨 가문엔 이미 세 명의 아들이 있었으며, 집안이 찢어 지게 가난 했기에 병약한 김이서를 키울 여력이 없어 결국 윤준호에게 보낸 것이다.

한편,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김이서는 낡은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유수민과 김천호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였고 그들의 마음속엔 불안함이 엄습했지만 감히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서야. 윤씨 가문에서는... 잘 지냈어?"

결국 김천호가 참지 못하고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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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레온 같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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